
화산 아래 활기찬 남부 항구도시
나폴리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 주의 주도로, 나폴리만을 끼고 형성된 항구도시다. 도시 뒤편으로는 활화산 베수비오가 우뚝 솟아 있어 독특한 지형적 긴장감을 자아내는데, 이 화산은 서기 79년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을 화산재로 뒤덮은 바로 그 산이다. 나폴리는 로마나 밀라노와는 전혀 다른 남부 특유의 활력과 무질서가 뒤섞인 도시로, 좁은 골목 사이로 오토바이가 질주하고 빨래가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며 널려 있는 풍경이 일상이다. 구시가지 중심을 관통하는 스파카나폴리 거리는 도시를 반으로 가른다는 뜻의 이름 그대로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도로 격자 위에 형성된 길로, 오래된 성당과 상점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나폴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방대한 역사 지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하에는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사용된 터널과 수로가 미로처럼 얽혀 있어 나폴리 소테라네아라는 지하 투어로 둘러볼 수 있다. 도시 이미지는 다소 거칠고 치안이 불안하다는 평판도 있지만, 그만큼 관광지화되지 않은 날것의 이탈리아 남부 생활상을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폴리는 폼페이 유적과 소렌토, 아말피 해안, 카프리 섬으로 향하는 관문 도시 역할도 겸한다. 도시의 기원은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인들이 세운 식민지 네아폴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후 로마와 노르만, 스페인 왕가의 지배를 차례로 거치면서 18세기에는 부르봉 왕가가 다스리던 양시칠리아 왕국의 수도로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로 성장했다. 구시가지의 산 그레고리오 아르메노 거리는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 구유 인형을 만드는 공방이 늘어서 있어 나폴리 특유의 수공예 전통을 생생히 보여준다. 도심과 언덕 지대 보메로를 잇는 푸니콜라레는 19세기부터 운행되어 온 케이블카식 열차로, 가파른 지형을 오가는 시민들의 주요 교통수단으로 지금도 활용된다. 도시의 수호성인 산 젠나로의 피가 액체로 변한다는 전통 의식은 매년 여러 차례 대성당에서 거행되며 나폴리 사람들의 깊은 신앙심을 상징한다. 항구 쪽 몰로 베베렐로 선착장에서는 카프리, 이스키아, 프로치다 등 인근 섬으로 향하는 페리가 수시로 출발해 나폴리만의 섬들을 당일치기로 오갈 수 있다. 스페인 지구로 불리는 콰르티에리 스파뇰리는 16세기 스페인 군대 주둔지에서 유래한 동네로, 좁은 골목 사이로 빨래가 널려 있고 벽마다 축구 영웅 마라도나의 초상화 벽화가 그려져 있어 나폴리 서민 문화를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구역으로 꼽힌다.
스파카나폴리와 폼페이 사이, 나폴리의 볼거리
나폴리 시내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축물 중 하나는 해안가에 자리한 카스텔 델로보, 즉 달걀 성이다. 작은 섬 위에 세워진 이 성은 전설에 따르면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성의 기초에 달걀을 묻어 도시의 운명을 지켰다는 이야기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톨레도 거리는 나폴리에서 가장 번화한 쇼핑가로, 그 아래 톨레도 지하철역은 파란 타일과 조명으로 마치 바닷속을 걷는 듯한 예술적 공간으로 꾸며져 있어 그 자체로 명소가 되었다. 카포디몬테 박물관은 언덕 위 왕궁 건물에 자리해 카라바조와 티치아노 등 거장의 회화를 소장하고 있으며 나폴리 시내를 내려다보는 전망도 함께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나폴리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근교의 폼페이 유적으로, 화산재에 묻혔던 고대 로마 도시가 거리와 벽화, 생활 흔적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기 좋다.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는 폼페이에서 발굴된 유물과 모자이크가 대거 전시되어 있어 유적지 방문 전후로 함께 둘러보면 이해도가 높아진다. 산텔모 성과 카르투지오 수도원이 자리한 보메로 언덕에서는 나폴리만과 베수비오 화산을 한눈에 담는 파노라마 전망을 즐길 수 있다. 19세기에 지어진 갈레리아 움베르토 1세는 철골과 유리로 된 돔 천장이 인상적인 아케이드로, 밀라노의 갈레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쇼핑 아케이드로 꼽힌다. 플레비시토 광장은 나폴리에서 가장 넓은 광장으로 로마 판테온을 본떠 지은 산 프란체스코 디 파올라 성당의 반원형 열주가 광장을 감싸고 있으며, 맞은편에는 왕정 시대의 누오보 성이 자리한 몰로 베베렐로 항구가 이어진다. 근교 헤르쿨라네움 유적은 폼페이보다 규모는 작지만 화산 이류에 의해 유기물까지 탄화된 채 보존되어 있어 당시 생활상을 더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소렌토와 아말피 해안으로 이어지는 협궤 열차 치르쿰베수비아나는 베수비오 화산 자락을 따라 달리며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 유적지를 함께 둘러보기에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화산 정상 분화구까지는 별도의 셔틀버스와 도보 코스로 오를 수 있어, 날씨가 맑은 날에는 나폴리만 전체와 카프리 섬까지 시야에 들어오는 장관을 만날 수 있다. 나폴리 지하 세계를 탐험하는 나폴리 소테라네아 투어에서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 채석장으로 쓰이던 동굴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방공호로 사용된 터널을 함께 둘러볼 수 있어, 도시가 겪어온 오랜 시간의 층위를 지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카포디몬테 궁전 주변 공원 역시 시민들이 즐겨 찾는 녹지다.
피자의 고향에서 맛보는 진짜 나폴리
나폴리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피자의 발상지다. 화덕에서 고온으로 빠르게 구워내는 나폴리 피자는 얇고 쫄깃한 도우 가장자리가 부풀어 오르는 것이 특징이며, 토마토와 모차렐라, 바질만으로 완성한 마르게리타 피자가 원조로 꼽힌다. 시내 곳곳에는 대를 이어 운영되는 오래된 피체리아가 많고, 현지인들은 자리에 앉아 격식 없이 손으로 접어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피자 외에도 튀긴 반죽에 리코타 치즈를 채운 스폴리아텔라, 럼에 적신 폭신한 케이크 바바가 나폴리를 대표하는 디저트로 꼽힌다. 커피 문화도 독특해서, 에스프레소를 아주 진하고 강하게 내리는 나폴리식 커피는 스탠딩 바에서 짧게 마시고 나가는 것이 일상적인 풍경이다. 거리에서는 흥정과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는 무례함이 아니라 남부 특유의 친근한 소통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소지품 관리에는 다른 이탈리아 도시보다 조금 더 신경을 쓰는 것이 좋으며, 특히 기차역 주변과 붐비는 골목에서는 가방을 몸 앞쪽으로 메는 것이 안전하다. 나폴리는 여름철이 매우 무덥고 습하므로 봄이나 가을에 방문하면 폼페이 유적 관람이나 도보 이동이 한결 수월하다. 나폴리 피자는 2017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그 전통 제조법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으며, 화덕 온도와 반죽 발효 시간까지 엄격한 규정을 따르는 정통 피체리아 협회 인증 가게도 여럿 있다. 피자 외에 프리트 미스타라 불리는 다양한 튀김 요리와 감자, 치즈, 살라미를 넣어 튀긴 피자 프리타 역시 길거리 간식으로 인기가 많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스트루폴리라는 꿀에 버무린 튀긴 반죽 과자가 가정마다 등장하며, 부활절에는 오렌지 꽃물로 향을 낸 파스티에라 나폴레타나가 대표적인 명절 디저트로 자리한다. 나폴리 사람들은 골목 창문 사이로 바구니를 실에 매달아 물건을 주고받는 아 팔란차라는 옛 풍습을 지금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는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고 이웃과 물건을 주고받던 서민 생활의 지혜에서 비롯되었다. 나폴리 방언은 표준 이탈리아어와 상당히 다른 독자적인 어휘와 억양을 지니고 있어 이탈리아 내에서도 별도의 언어처럼 취급되며, 나폴리 민요 오 솔레 미오 역시 이 방언으로 불려 전 세계에 알려졌다. 나폴리 사람들은 손짓과 표정을 곁들여 대화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런 활기찬 몸짓 언어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오랜 세월 다져진 나폴리식 소통 방식의 일부다. 나폴리를 배경으로 한 소설 나의 눈부신 친구가 흥행하며 뒷골목 풍경이 새롭게 조명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