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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 여행 가이드 - 스페인과 미국, 아시아가 겹쳐진 도시

by 하늘로고고씽 2026. 9. 3.

스페인과 미국, 아시아가 겹쳐진 도시 마닐라

마닐라는 필리핀의 수도로, 마닐라만을 낀 좁은 행정구역 자체는 도심 지역만을 가리키지만 흔히 마닐라라 부를 때는 마카티, 케손시티, 파사이, 타기그 등이 포함된 메트로 마닐라 전체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16세기 스페인 식민 통치의 흔적과 이후 미국 통치기의 영향, 그리고 현대적인 고층 빌딩이 한데 뒤섞여 있어 도시를 걷다 보면 시대가 겹겹이 포개진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스페인어에서 유래한 지명과 가톨릭 성당이 도시 곳곳에 자리한 반면, 대중교통인 지프니의 화려한 장식은 필리핀 특유의 자유분방한 미감을 보여준다.

메트로 마닐라는 각 구역마다 성격이 뚜렷이 다르다. 마카티는 고층 오피스와 국제적인 쇼핑몰이 밀집한 금융 중심지이며, 보니파시오 글로벌 시티(BGC)는 계획도시답게 넓은 보행로와 세련된 건축물로 채워져 있다. 반면 옛 도심인 인트라무로스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스페인 식민지 시대 구시가지로, 시간이 멈춘 듯한 골목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기후는 열대성으로 3월부터 5월까지가 가장 무덥고, 6월부터 11월 사이에는 태풍의 영향을 자주 받아 폭우와 침수가 발생하기도 한다. 필리핀 사람들은 대체로 유쾌하고 정이 많은 성향으로 알려져 있으며, 파키키사마라 불리는 공동체적 배려심이 일상 대화와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도시의 교통 체증은 심각한 수준으로 꼽히며, EDSA 대로는 출퇴근 시간마다 극심한 정체를 겪는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마닐라만의 노을은 세계적으로도 아름답기로 유명해, 로하스 대로를 따라 해 질 무렵 산책을 즐기는 시민과 여행객이 끊이지 않는다. 이처럼 마닐라는 혼잡함과 여유로움,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는 도시로, 짧은 방문만으로는 다 담아내기 어려운 다층적인 얼굴을 지니고 있다.

메트로 마닐라를 이루는 각 시는 저마다 독립적인 시청과 행정 체계를 갖추고 있어 하나의 도시라기보다 여러 도시가 이어붙은 연합체에 가깝다. 파사이 지역에는 국제공항과 대형 컨벤션 센터, 카지노 리조트가 몰려 있어 국제적인 색채가 짙고, 케손시티는 주거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대학가와 방송국이 자리한 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겸한다. 필리핀은 7천 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 국가인 만큼 마닐라는 국내선 항공과 페리 노선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관문 도시로서의 위상도 함께 지니고 있다. 스페인어의 흔적이 남은 지명과 미국식 프랜차이즈 간판이 나란히 걸린 거리 풍경은 두 제국의 통치를 모두 거친 이 도시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짐작하게 한다.

인트라무로스 성벽에서 리잘 공원까지, 마닐라 걷기

인트라무로스는 마닐라 여행의 출발점으로 삼기 좋은 곳으로, 성벽 안쪽에는 스페인 식민 시대에 지어진 산 아구스틴 성당과 마닐라 대성당이 자리해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건축물들을 볼 수 있다. 성벽을 따라 자전거를 대여해 돌거나 칼레사라는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골목을 도는 체험도 이 지역에서만 즐길 수 있는 색다른 방식이다. 성벽 바로 옆에는 필리핀의 국민 영웅 호세 리잘이 처형된 자리에 조성된 리잘 공원이 넓게 펼쳐져 있어, 역사와 여유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마닐라만을 따라 이어지는 로하스 대로에서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노을을 감상할 수 있으며, 인근 오션파크나 대형 쇼핑몰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여행객도 많다. 마카티의 그린벨트와 아얄라 센터는 정원처럼 꾸며진 야외 공간과 명품 매장이 어우러져 있어 도심 속 휴식처로 인기가 높다.

전통 시장을 경험하고 싶다면 디비소리아 시장을 추천할 만한데, 저렴한 의류와 잡화가 거리 가득 쌓여 있어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케손시티의 라 메사 생태공원은 도심에서 벗어나 녹지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알맞은 장소로, 저수지를 둘러싼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근교로 반나절 다녀올 수 있는 타가이타이는 타알 화산을 조망할 수 있는 고원 지대로, 마닐라의 더위를 피해 서늘한 공기를 즐기려는 현지인들이 주말마다 즐겨 찾는다.

BGC의 보니파시오 하이스트리트는 야외 조각공원과 브랜드 매장이 어우러진 계획형 상업지구로, 넓은 인도와 정돈된 가로수길이 다른 마닐라 지역과 대비되는 쾌적함을 준다. 파사이의 몰 오브 아시아는 한때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로 꼽히던 쇼핑몰로, 마닐라만을 마주한 야외 공간에서 저녁 노을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좋은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인트라무로스 내부의 포트 산티아고는 스페인 시대 요새이자 호세 리잘이 처형 전 마지막으로 갇혀 있던 곳으로, 그의 발자국이 새겨진 동판을 따라가며 순교의 여정을 되짚어볼 수 있다. 국립박물관 단지는 자연사관과 인류학관, 미술관으로 나뉘어 있어 필리핀의 자연환경과 원주민 문화, 근현대 미술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종합적인 문화 공간으로 기능한다. 마닐라 대성당 앞 광장에서는 결혼식 촬영을 하는 커플을 자주 마주치게 되는데, 필리핀 특유의 화려하고 떠들썩한 축하 문화를 곁에서 지켜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가 된다. 성벽 위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마닐라만 방향으로 저녁 노을이 번지는 모습을 조용히 감상할 수 있어,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기에 알맞은 장소로도 손꼽힌다.

지프니와 아도보로 만나는 마닐라의 일상

필리핀 특유의 대중교통인 지프니는 원래 미군이 남긴 지프를 개조해 만든 것으로, 알록달록한 장식과 함께 지금도 서민의 발이 되어주고 있다. 최근에는 그랩 애플리케이션으로 택시를 부르는 방식이 여행자에게 더 편리하며, LRT와 MRT 경전철도 주요 관광지를 연결한다. 다만 출퇴근 시간대의 도로 정체는 상상 이상이므로 이동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한다.

필리핀 음식은 스페인, 중국, 말레이 문화가 뒤섞여 독특한 맛을 낸다. 식초와 간장, 마늘로 고기를 조린 아도보는 필리핀을 대표하는 가정식이며, 통돼지를 숯불에 구운 레촌은 잔치나 명절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다진 돼지고기와 채소를 볶은 시시그, 망고와 젤리, 팥을 얼음과 함께 섞은 디저트 할로할로도 여행 중 꼭 맛보면 좋을 메뉴로 꼽힌다.

필리핀 사람들은 손윗사람에게 존중을 표하는 손등 인사인 마노포와 웃어른을 부를 때 붙이는 호칭 등 가족 중심의 예절 문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낯선 사람에게도 친근하게 말을 거는 경우가 많아 여행 중 현지인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경우가 잦다.

우기인 6월부터 11월 사이에는 태풍 소식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갑작스러운 결항이나 홍수에 대비해 일정에 여유를 두는 것이 좋다. 팁 문화가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서비스에 만족했다면 소액의 팁을 건네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필리핀은 영어가 공용어 중 하나로 널리 통용되어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에 비해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이 없는 편이며, 표지판과 메뉴판도 대부분 영어와 타갈로그어가 함께 표기되어 있다. 쇼핑몰마다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 하는 절차가 일상화되어 있는데, 이는 안전을 중시하는 현지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대가족 중심의 문화가 강해 명절이나 주말이면 온 가족이 함께 외식을 즐기는 모습을 쇼핑몰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성당 방문 시에는 미사 시간을 피해 조용히 둘러보는 배려가 필요하며, 필리핀 인구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만큼 종교 행사나 축일에는 거리 행렬이 갑작스레 도로를 막는 경우도 있으니 일정에 여유를 두는 편이 좋다. 낮 동안 카지노와 대형 쇼핑몰에서 냉방을 즐기다가 저녁이 되면 야외 로컬 식당으로 이동하는 것이 무더위와 소나기를 동시에 피하는 현지식 하루 일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소액권 현금을 넉넉히 준비해두면 지프니 요금이나 노점 결제 시 요긴하게 쓰이니, 환전 후 잔돈을 미리 확보해두는 편이 여러모로 편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