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붉은 도시 마라케시, 아틀라스산맥 아래 메디나
모로코 남부에 자리한 마라케시는 만년설을 인 아틀라스산맥을 배경으로 펼쳐진 도시로, 도심 건물 대부분이 붉은 흙빛 테라코타 색으로 통일되어 있어 예로부터 붉은 도시라는 별칭으로 불려왔다. 11세기 베르베르 왕조에 의해 세워진 이 도시는 오랜 세월 사하라 사막을 오가는 대상들의 중요한 교역 거점 역할을 하며 번영을 이루었다.
도시의 심장부인 메디나는 두꺼운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로,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길이 사방으로 뻗어 있어 처음 방문하는 여행자는 길을 잃기 십상이라는 이야기가 여행 후기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복잡한 골목 구조는 과거 외부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되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마라케시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신시가지인 겔리즈 지구가 새롭게 조성되었고, 이 지역에는 현대적인 카페와 부티크가 들어서 있어 전통적인 메디나와는 사뭇 다른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처럼 도시는 고대 이슬람 건축과 프랑스풍 근대 도시 계획이 공존하는 독특한 이중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기후는 건조한 반사막성 기후로 여름철에는 상당히 뜨거운 더위가 이어지며, 특히 7월과 8월의 한낮 기온은 매우 높게 올라가므로 이 시기 여행은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 위주로 일정을 짜는 것이 권장된다. 반대로 겨울철에는 낮과 밤의 기온차가 커서 밤에는 제법 쌀쌀한 날씨를 보인다.
마라케시는 사하라 사막으로 향하는 관문 도시로도 잘 알려져 있어, 도시를 거점 삼아 아틀라스산맥을 넘어 사막 지역으로 떠나는 여행자들이 많다. 이 때문에 도시 곳곳의 여행사에서는 사막 캠핑과 낙타 트레킹을 결합한 다양한 투어 상품을 취급하는 것이 흔한 풍경이다.
마라케시 사람들은 모로코 특유의 손님 환대 문화를 소중히 여기며, 민트차를 권하며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이 일상적이다. 아랍과 베르베르, 안달루시아 문화가 뒤섞인 이 도시의 정체성은 음악과 공예, 건축 양식 곳곳에서 다층적으로 드러난다.
과거 이슬람 스페인, 즉 안달루시아에서 추방된 무슬림과 유대인들이 이 도시로 대거 이주해 오면서 마라케시의 건축과 공예 기술은 한층 더 정교하게 발전했으며,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지금도 메디나 곳곳에 남은 정교한 타일 모자이크와 조각 장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도시를 둘러싼 성벽 바깥으로는 야자수가 늘어선 팜므레라는 오아시스 지대가 펼쳐져 있어, 사막 기후 속에서도 물을 끌어들여 농업을 이어온 전통 관개 기술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제마엘프나 광장에서 마조렐 정원까지, 마라케시 골목 탐험
제마엘프나 광장은 마라케시 여행의 중심이자 유네스코가 인정한 무형문화유산으로, 낮에는 오렌지주스 노점과 뱀을 다루는 공연가들이 자리하다가 해가 지면 수백 개의 즉석 음식 노점이 들어서며 완전히 다른 얼굴로 변모한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노점 사이로 악사와 이야기꾼들의 공연이 어우러지는 저녁 풍경은 마라케시를 대표하는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광장을 둘러싼 수크, 즉 전통 시장은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마다 각기 다른 품목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구역이 나뉘어 있어, 가죽 제품과 향신료, 금속 공예품, 카펫을 파는 상인들이 저마다의 구역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흥정은 이 시장에서 필수적인 문화로 여겨지며, 처음 제시된 가격에서 상당 부분을 깎아 협상하는 것이 일반적인 거래 방식으로 통한다.
도심에 우뚝 솟은 쿠투비아 모스크의 첨탑은 마라케시 스카이라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12세기에 세워진 이 첨탑의 건축 양식은 이후 지어진 모로코와 스페인의 여러 이슬람 건축물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비록 모스크 내부는 비이슬람교도에게 개방되지 않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첨탑의 정교한 장식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가 된다.
바히아 궁전은 19세기 모로코 고위 관료가 지은 저택으로, 화려한 자개 장식과 정교한 타일 모자이크, 아름다운 안뜰 정원이 어우러져 모로코 전통 건축의 정수를 보여준다. 방마다 다른 장식과 조각이 새겨져 있어 천천히 둘러보며 세부적인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좋은 장소로 소개된다.
프랑스 화가 자크 마조렐이 조성하고 이후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이 복원한 마조렐 정원은 짙은 코발트블루 건물과 이국적인 선인장, 대나무가 어우러진 이색적인 정원으로, 메디나의 흙빛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색채의 공간을 선사한다. 정원 내 베르베르 박물관에서는 모로코 원주민인 베르베르족의 전통 의상과 장신구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메디나 곳곳에 자리한 전통 가죽 염색 공방에서는 오래전 방식 그대로 가죽을 무두질하고 염색하는 과정을 견학할 수 있는데, 특유의 강한 냄새 때문에 안내인이 방문객에게 민트 잎을 건네는 것이 오랜 관례로 자리잡았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형형색색의 염색 웅덩이들은 마라케시를 상징하는 독특한 사진 명소로도 유명하다.
메디나 지붕 위 테라스 카페들도 이 도시를 즐기는 방법으로 꼽히는데, 미로 같은 골목에서 벗어나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붉은 지붕과 아틀라스산맥의 풍경이 인상적이다.
타진과 민트차로 느끼는 모로코의 환대
타진은 원뿔 모양의 뚜껑을 덮은 점토 냄비에 고기와 채소, 말린 과일을 함께 넣어 오랜 시간 쪄내는 모로코의 대표 요리로, 재료가 뭉근하게 익으며 우러난 깊은 풍미가 특징이다. 가정과 식당마다 조금씩 다른 향신료 배합을 사용해 저마다 고유한 맛을 낸다는 점이 이 요리의 매력으로 꼽힌다.
민트차는 모로코 전역에서 손님 접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음료로, 진한 녹차에 신선한 민트 잎과 설탕을 듬뿍 넣어 우려낸다. 찻주전자를 높이 들어 찻잔에 차를 따르는 독특한 방식은 그 자체로 볼거리가 되며, 거품이 잘 이는 것을 좋은 차의 기준으로 여기는 문화가 있다.
쿠스쿠스는 잘게 부순 밀가루 알갱이를 쪄서 고기와 채소 스튜와 함께 곁들이는 요리로, 전통적으로 금요일 예배 후 가족이 모여 나누어 먹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식사 문화는 모로코 사회에서 음식이 단순한 끼니를 넘어 공동체를 잇는 중요한 매개체임을 보여준다. 아침 식사로는 겹겹이 층을 이룬 팬케이크 형태의 므스멘이나 벌집 모양의 얇은 빵 바그리르가 꿀과 함께 자주 곁들여지며, 이 또한 모로코 가정의 흔한 아침 풍경으로 꼽힌다.
메디나 곳곳에는 하맘이라 불리는 전통 목욕탕이 자리해 있으며, 뜨거운 증기 속에서 각질을 제거하고 마사지를 받는 이 체험은 모로코 문화의 오랜 위생과 휴식 전통을 보여주는 요소로 여행자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흑비누와 라수르 점토를 활용한 전통 방식이 대부분의 하맘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여성 여행자의 경우 지나치게 노출이 심한 옷차림은 피하고 어깨와 무릎을 가리는 복장을 갖추는 것이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로 권장되며, 시장에서 흥정할 때는 웃음을 잃지 않는 여유로운 태도가 오히려 좋은 거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조언이 자주 언급된다.
마라케시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모로코 전통 공예와 사막 여행에 대한 관심이 좋은 화젯거리가 되며, 정중하고 개방적인 태도로 다가가면 이 도시 특유의 따뜻한 환대를 몸소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방문객들의 공통된 후기로 꼽힌다.
디저트로는 아몬드와 꿀을 켜켜이 쌓아 만든 페이스트리와 참깨, 꿀을 뭉쳐 만든 슬리우가 대표적이며, 명절이나 특별한 손님을 맞이할 때 이러한 전통 과자를 정성껏 준비하는 문화가 이어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다양한 향신료를 원뿔 모양으로 쌓아 진열한 상점들이 눈길을 끄는데, 사프란과 큐민, 계피 향이 뒤섞인 향신료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모로코 요리 문화의 풍성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