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과 첨탑이 공존하는 북부의 심장
밀라노는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주의 주도로, 로마나 피렌체와는 결이 다른 도시다. 고대 유적보다는 산업과 금융, 패션이 도시의 정체성을 이루며, 이탈리아 증권거래소와 수많은 글로벌 기업 본사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도심 한복판에는 완공까지 수백 년이 걸린 밀라노 두오모가 서 있어 고딕 양식의 첨탑 135개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밀라노는 매년 두 차례 열리는 밀라노 패션위크와 가구 박람회 살로네 델 모빌레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몬테나폴레오네 거리를 중심으로 한 콰드릴라테로 델라 모다는 명품 브랜드의 본고장이라 불릴 만큼 고급 부티크가 밀집해 있다. 도시는 안개가 잦은 겨울 날씨로도 알려져 있는데, 포강 유역 평원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습기가 쉽게 정체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나빌리오 운하 지구처럼 과거 산업 시설이었던 공간이 힙한 바와 갤러리로 탈바꿈하며 젊은 층이 몰리는 명소로 떠올랐다. 밀라노는 이탈리아의 다른 관광 도시에 비해 관광객보다 비즈니스 방문객이나 유학생 비중이 높은 편이라 도시 전체적으로 실용적이고 빠른 생활 리듬이 느껴진다. 밀라노는 고대 켈트족이 세운 메디올라눔이라는 정착지에서 출발해 로마 제국 시대에는 서로마 제국의 수도로 기능하기도 했으며,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밀라노 칙령이 반포된 곳으로도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에는 비스콘티 가문과 스포르차 가문이 차례로 도시를 다스리며 강력한 공국을 이루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폭격으로 도심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으나 전후 빠르게 재건되어 오늘날의 현대적 스카이라인을 갖추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정치 수도는 로마지만 경제와 금융의 실질적 중심은 밀라노로, 이탈리아 국내총생산의 상당 부분이 롬바르디아 주에서 창출된다. 축구 명문 인터 밀란과 AC 밀란이 홈구장으로 쓰는 산 시로 경기장은 두 팀이 한 경기장을 공유하는 독특한 사례로도 유명하다. 명문 사립대학 보코니 대학교와 공과대학 폴리테크니코 디 밀라노가 자리해 유학생과 연구 인력이 많이 모이며, 주말이면 근교의 코모 호수나 마조레 호수로 짧은 휴양을 떠나는 현지인도 많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스포르차 가문의 궁정 화가로 초빙되어 밀라노에서 최후의 만찬을 비롯한 여러 걸작을 남겼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프라다, 베르사체, 돌체앤가바나 등 세계적인 패션 하우스들이 본사를 두고 있어 매년 2월과 9월 열리는 밀라노 패션위크 기간에는 도시 전체가 셀러브리티와 바이어들로 북적인다.
두오모부터 나빌리오까지, 밀라노의 얼굴들
밀라노 두오모는 내부보다 지붕 위 전망이 더 유명하다. 엘리베이터나 계단을 이용해 옥상에 오르면 첨탑 사이를 거닐며 도시 전경과 맑은 날에는 멀리 알프스 산맥까지 조망할 수 있다. 두오모 광장 옆에 자리한 갤러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유리 돔 천장으로 덮인 19세기 아케이드로, 명품 매장과 카페가 늘어서 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쇼핑몰 중 하나로 꼽힌다. 바닥에 새겨진 황소 모자이크 위에서 발뒤꿈치로 한 바퀴 돌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도 전해진다.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부속 식당 벽면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훼손을 막기 위해 하루 관람 인원이 제한되어 있어 사전 예약이 필수다. 스포르차 성은 밀라노 공작 가문의 요새였던 곳으로 지금은 여러 박물관이 들어서 있으며 성 뒤편의 셈피오네 공원과 이어져 산책하기 좋다. 세계적인 오페라 극장 라 스칼라에서는 공연을 보지 않더라도 박물관 투어를 통해 화려한 객석과 무대를 둘러볼 수 있다. 나빌리오 운하 지구는 15세기에 건설된 수로를 따라 형성된 구역으로, 저녁이 되면 운하변 바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여유를 즐긴다. 두오모는 1386년 공사를 시작해 완성까지 무려 500년 가까이 걸렸으며, 파사드의 마지막 부분은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왕으로 즉위하던 시기에 서둘러 마무리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브레라 지구에 자리한 피나코테카 디 브레라는 만테냐와 라파엘로 등 이탈리아 거장들의 회화를 소장한 미술관으로, 같은 건물에 브레라 미술 아카데미가 함께 있다. 최근 개발된 포르타 누오바 지구는 초고층 빌딩이 밀집한 밀라노의 새로운 스카이라인을 이루며, 그중 보스코 베르티칼레는 발코니마다 나무와 식물을 심은 수직 숲 건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인근 가에 아울렌티 광장은 분수와 계단식 광장이 어우러진 현대적 공공 공간으로 저녁이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된다. 몬투멘탈레 공동묘지는 화려한 조각상과 영묘가 늘어서 있어 이탈리아 상류층의 예술적 취향을 엿볼 수 있는 독특한 명소로 꼽힌다. 두오모 지붕에는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황금빛 마돈니나 조각상이 첨탑 꼭대기에 자리해 밀라노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지며, 한때 이 조각상보다 높은 건물을 짓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지켜지기도 했다. 갤러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이탈리아 통일을 이끈 초대 국왕의 이름을 딴 것이다. 산 시로 경기장은 정식 명칭이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로, 홈경기가 없는 날에는 박물관과 함께 경기장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아페리티보로 배우는 밀라노식 저녁
밀라노는 아페리티보 문화의 발상지로 여겨진다. 이른 저녁 시간 바에서 음료 한 잔을 주문하면 다양한 안주가 뷔페식으로 함께 제공되는 방식으로, 캄파리나 네그로니 같은 밀라노에서 탄생한 칵테일과 함께 즐기는 것이 정석이다. 나빌리오 운하변이나 브레라 지구의 바에 저녁 6시쯤 가면 이런 분위기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 음식으로는 사프란을 넣어 노란빛을 띠는 리소토 알라 밀라네제, 얇게 튀긴 송아지 커틀릿 코톨레타 알라 밀라네제, 여러 부위 고기를 넣고 끓인 스튜 오소부코가 대표적인 향토 요리로 꼽힌다. 브레라 지구는 미술 아카데미가 있는 예술가들의 동네로, 좁은 골목마다 개성 있는 레스토랑과 편집숍이 자리해 산책하며 구경하기 좋다. 쇼핑을 원한다면 명품을 취급하는 몬테나폴레오네 거리 외에도, 코르소 부에노스 아이레스처럼 대중적인 브랜드가 몰린 거리도 함께 둘러보면 예산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밀라노는 대중교통 체계가 잘 갖춰져 있어 지하철과 트램만으로도 웬만한 명소에 접근할 수 있으며, 다른 이탈리아 도시에 비해 소매치기 등 관광객 대상 범죄에 조금 더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즐겨 먹는 파네토네는 밀라노에서 탄생한 전통 빵으로, 건포도와 설탕에 절인 과일이 들어간 폭신한 식감이 특징이며 이제는 이탈리아 전역과 해외에서도 겨울철 필수 디저트로 자리 잡았다. 코톨레타 알라 밀라네제는 오스트리아의 비너 슈니첼과 흡사해 어느 쪽이 원조인지를 두고 오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나빌리오 운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에 관여한 갑문 시스템 덕분에 배가 수위 차를 극복하며 이동할 수 있었다고 전해지며, 한때 롬바르디아 내륙과 물자를 실어 나르던 주요 수로였다. 밀라노 중앙역은 파시즘 시대에 지어진 웅장한 석조 건물로 그 규모와 장식만으로도 볼거리가 된다. 대중교통은 지하철 4개 노선과 트램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어 관광지 대부분을 저렴하게 오갈 수 있으며, 코르소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유럽에서 손꼽히게 긴 쇼핑 거리로 다양한 브랜드 매장이 늘어서 있다. 리소토 알라 밀라네제에 사프란을 넣게 된 유래로는 두오모 스테인드글라스 장인이 장난삼아 리소토에 사프란을 넣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진위는 불분명하지만 밀라노를 대표하는 이야기로 즐겨 회자된다. 말펜사와 리나테 두 개의 국제공항이 있어 접근성이 좋다. 밀라노 중앙역에서 고속열차를 타면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등 주요 도시로 두세 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