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도 위의 고산 수도, 키토의 지붕 아래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는 적도선에서 불과 몇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하면서도 해발 2,800미터가 넘는 안데스 고원에 세워져 있어, 적도라는 이름과는 달리 연중 서늘하고 봄과 같은 기후가 이어지는 독특한 도시다. 이 도시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좁은 분지에 형성되어 있어, 도시를 걷다 보면 늘 주변을 둘러싼 화산 봉우리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도심 서쪽에 우뚝 솟은 판에치조 화산은 키토 스카이라인의 상징으로, 만년설을 이고 있는 정상부와 그 아래 펼쳐진 도시 풍경이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이 화산은 여전히 활동 중인 것으로 분류되어 있어, 키토는 지진과 화산 활동이라는 지질학적 긴장 속에서 오랜 세월 발전해온 도시라 할 수 있다.
키토의 구시가지는 남미에서 가장 잘 보존된 식민지 시대 도심으로 평가받으며,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에서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좁은 자갈길을 따라 늘어선 성당과 수도원, 저택들이 16세기부터 이어진 스페인 식민지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도시는 크게 구시가지와 북쪽의 현대적인 신시가지로 나뉘는데, 구시가지가 종교와 역사 건축의 밀집 지역이라면 마리스칼 지구를 중심으로 한 신시가지는 호스텔과 바, 여행사가 몰린 관광객 중심 구역으로 자리잡았다. 이 두 지역은 성격이 확연히 달라 하루는 역사 탐방, 하루는 현대적인 도시 생활을 경험하는 식으로 일정을 짜는 여행자가 많다.
기후는 고산성으로 하루 안에도 맑음과 비가 반복되는 경우가 흔하며, 적도에 가깝다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일 년 내내 낮과 밤의 길이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점도 다른 고산 도시와 구별되는 특징이다. 자외선이 매우 강한 지역으로 꼽히므로 계절에 관계없이 자외선 차단제가 필수품으로 여겨진다.
키토는 갈라파고스 제도로 향하는 관문 도시로도 잘 알려져 있어, 세계적인 생태 관광지를 방문하기 전 반드시 거쳐가게 되는 도시라는 지리적 위상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도시 곳곳의 여행사에서는 갈라파고스와 아마존 정글 투어 상품을 함께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에콰도르라는 국가명 자체가 스페인어로 적도를 뜻할 만큼 이 나라의 정체성은 적도라는 지리적 위치와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으며, 키토는 그 상징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수도로서 국가 정체성의 중심축 역할을 한다. 안데스산맥을 따라 남북으로 늘어선 여러 화산들 덕분에 키토 인근에는 화산 지대를 트레킹으로 둘러볼 수 있는 코스도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라콤파냐 성당에서 미딸델문도까지, 키토 탐방기
구시가지의 라콤파냐 데헤수스 성당은 내부 전체가 금박으로 뒤덮여 있어 남미에서도 손꼽히게 화려한 바로크 양식 성당으로 평가받는다. 제단부터 기둥, 천장 장식까지 금빛으로 물든 내부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 종교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사례로, 사진 촬영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아 직접 눈으로 담아야 하는 감동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는 평가를 받는다.
산프란시스코 성당과 수도원은 남미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며, 넓은 광장 앞에 자리한 웅장한 외관이 구시가지를 대표하는 풍경을 이룬다. 수도원 내부의 박물관에서는 식민지 시대 종교 미술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어, 당시 원주민 장인들의 기술이 유럽 양식과 결합된 독특한 예술 사조를 확인할 수 있다.
구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다면 파네시요 언덕에 오르는 것이 대표적인 코스로 꼽히는데, 언덕 정상에는 날개 달린 성모마리아 상이 도시를 굽어보고 있어 키토의 상징적인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구시가지의 붉은 지붕과 그 너머로 늘어선 안데스 봉우리들의 조합은 키토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으로 자주 언급된다.
도심 북쪽 판에치조 화산 자락까지는 텔레페리코라 불리는 케이블카를 이용해 오를 수 있으며, 정상 부근에서는 키토 시가지 전체와 멀리 다른 화산 봉우리들까지 이어지는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다. 고지대인 만큼 이곳에서는 도심보다 한층 더 쌀쌀한 기온을 체감하게 되므로 따뜻한 옷차림이 필요하다.
도시 북쪽 외곽에는 지구의 중심이라는 뜻의 미딸델문도 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적도선을 상징하는 노란 선을 따라 양발을 벌리고 서서 남반구와 북반구에 동시에 걸치는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 여행자들 사이에서 필수 코스로 통한다. 인근의 인티냔 박물관에서는 적도 지점에서 나타나는 여러 물리적 현상을 체험하는 실험들이 마련되어 있어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객에게도 인기가 높다.
구시가지의 인디펜던시아 광장은 대통령궁과 대성당이 마주한 도시의 중심 공간으로, 저녁이 되면 조명이 켜진 성당 건물과 광장을 오가는 시민들의 모습이 어우러져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광장 주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키토 여행의 소소한 즐거움으로 꼽힌다.
과달루페 성모상이 있는 바실리카 대성당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비교적 근대의 건축물로, 첨탑에 오르면 좁은 통로와 계단을 지나 구시가지 전체를 색다른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어 파네시요 언덕과는 또 다른 전망 명소로 꼽힌다.
파나마모자와 초콜릿으로 만나는 에콰도르 문화
흥미롭게도 파나마모자라는 이름과 달리 이 모자의 실제 원산지는 파나마가 아닌 에콰도르로, 20세기 초 파나마 운하 건설 노동자들이 이 모자를 쓰면서 잘못된 이름이 널리 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토 시장과 상점에서는 원산지의 자부심을 담아 정교하게 짜인 다양한 품질의 모자를 판매하며, 여행 기념품으로 특히 인기가 높다.
에콰도르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고품질 카카오 생산국으로, 키토 곳곳의 초콜릿 전문점에서는 산지별 카카오 함량과 풍미를 비교하며 시음할 수 있는 테이스팅 코너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존 저지대에서 재배된 원료로 만든 이 초콜릿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품질 좋은 기념품으로 자주 추천된다.
향토 음식으로는 감자와 치즈를 넣어 부친 도톰한 전병 요리 요아피나스가 대표적이며, 아침 식사나 간식으로 즐겨 먹는다. 고산 지대에서 재배되는 다양한 품종의 감자와 옥수수를 활용한 수프 로크로 데 파파도 키토를 대표하는 향토 음식으로 꼽히며, 아보카도와 치즈를 곁들여 먹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다.
고지대 도시인 만큼 고산병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며, 도착 직후에는 무리한 일정보다 충분한 휴식과 수분 섭취를 우선하는 것이 권장된다. 현지에서는 코카잎차나 허브차를 마시며 고도 적응을 돕는 문화가 자리잡아 있다.
치안과 관련해서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모두 관광객이 몰리는 구역은 비교적 안전하지만, 소매치기 등 경범죄에 대한 주의는 필요하며 야간에는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권장된다. 에콰도르는 미국 달러를 공식 화폐로 사용하고 있어 환전에 대한 부담이 적다는 점도 여행자에게 실질적인 편의로 꼽힌다.
키토 사람들은 대체로 온화하고 종교적 전통을 중시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어, 성당 방문 시에는 단정한 복장을 갖추는 것이 예의로 여겨진다. 원주민 시장에서 직물이나 수공예품을 구매할 때는 정성껏 만든 이들의 노력에 대한 존중을 담아 적정한 가격으로 거래하는 태도가 권장된다.
키토 근교의 오타발로 마을은 남미에서도 손꼽히는 대규모 원주민 수공예 시장으로 유명해, 당일치기 여행으로 자주 소개된다. 알록달록한 직물과 파나마모자, 은세공품이 좌판마다 가득 쌓여 흥정하는 재미와 함께 안데스 원주민 공동체의 생활상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기회로 평가받는다. 고산 지대 특유의 맑은 밤하늘 아래 별을 관측할 수 있는 것도 도심을 벗어난 근교 여행의 매력으로 꼽힌다.